구문소 :  굴이 있는 깊은 못, 용궁으로 통하는 문

 

구문소란?

구문소는 강원도 태백시 동점동에 위치한, 연못과 계곡, 강 이자 석회동굴로 1억5천년전, 사람의 힘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긴 시간을 강물이 석회암 암벽을 깎아 내려 생긴 강으로 철암천과 황지천이 만나는 곳에 위치하여 있다. 전설이나 옛 문헌에나 나오는 강물이 산을 넘어 흐르는 형태, 도강산맥을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곳으로 본래 풍수지리사상에서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강은 산을 넘지 못한다고 하지만 이곳 구문소는 신비롭게도 그런 풍설을 따르지 않는 특수한 곳이다. 이런 특수한 형태는 조선시대 많은 선비들을 불러모았으며 시적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구문소와 관련된 설화들

1)백룡과 청룡의 패권 다툼(구문소 지명과 구문소의 유래)
구문소가 생기기전, 석벽을 사이에 두고 황지천과 철암천에 큰 연못이 있었고, 각각의 연못에 백룡과 청룡이 살았다고 한다. 이 둘은 늘 석벽 꼭대기에 올라 낙동강의 지배권을 두고 싸웠는데 그 싸움이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백룡이 꾀를 내어 석벽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을 이용하여 공격하여 청룡을 제압하고 승천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구멍소 (구문소)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2)백병 백구 용문 설화
과거 엄종한이란 사람이 이 곳에서 고기를 잡아다 부모를 봉양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그물을 걷다가 발이 미끄러져 아득한 물속으로 빠지니 질겁하여 졸도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인어들이 이상야릇한 옷을 입고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는 별천지에 떨어지니, 엄종한은 이내 자신이 용궁에 다다랐음을 알게 되고, 용궁에서 기르는 닭을 잡아갔다는 죄목으로 용왕 앞에 끌려갔다고 한다. 엄종한이 그동안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잡은 물고기가 용궁의 닭이었던 것이다. 엄종한이 자신이 고기를 잡은 이유를 사실대로 아뢰자 용왕이 이내 그의 갸륵한 효심에 깊게 탄복하여 노여움을 풀고서 큰 연회를 열어주었다고 한다. 연회가 끝나고 엄종한은 흰 강아지의 안내를 받으며 뭍으로 나왔는데 뭍으로 나올 때 부모에게 드리기 위해 흰떡을 하나 숨겨서 가져왔다고 한다. 그러나 뭍으로 나오자 그 떡은 돌이 되어 먹을 수 없었고 엄종한은 그 돌을 쌀독에 넣었다고 한다. 다음날 엄종한의 부인이 쌀독을 열어보니 쌀독에 쌀이 가득 차 있었으며 아무리 퍼내도 없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은 그 돌떡을 백병석이라 부르는데 그 돌떡은 현재는 내려오지 않으며 일각에서는 한양조씨에게 시집간 딸이 빌려갔다는 설이 있고, 또 다른 딸이 쌀독 째 훔쳐 달아나다 황지천 외나무 다리에 빠져 돌떡이 다시 용궁으로 돌아갔다는 설도 있다

 

 

3) 백병 백구 백발 노인 설화
위의 설화의 다른 버전으로 엄종한이 노부모와 처자식등 10명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구문소에서 고기를 잡으며 살아갔는데 어느 날 그물을 걷다가 발이 미끄러져 아득한 천길 물속에 빠져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니 자신의 그물과 똑 같은 그물이 바위에 널브러져 있어 이를 이상하게 여겨 만지고 있으니 백발노인이 나타나 “이곳은 인간이 올 곳이 아닌데 그대는 어찌하여 왔으며 왜 그것을 만지는가?”하며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엄종한이 “저는 발이 미끄러져 이곳에 오게 되었나이다. 저 그물이 제 것과 같아 신기하게 여겨 살펴보고 있었습니다.”라고 고했다. 그러자 노인이 자신의 두 아들이 엄종한의 그물에 걸려 급류에 휘말려 크게 다쳤다가 최근에서야 나았으며 지금은 사냥을 나가고 없으니 두 아들이 돌아오기 전에 어서 돌아가라고 황급히 일렀다고 한다. 그러나 엄종한이 길을 몰라 돌아갈 수 없다고 한탄하자 흰 강아지 한 마리를 내주며 이 강아지를 따라가라고 하며 길을 가다 배가 고프면 먹으라며 품에서 떡을 꺼내 내주었다고 한다. 엄종한은 강아지를 따라 황급히 길을 떠났고 길을 가다 배가 고파 떡을 조금 먹으니 배가 부르고 이상하리만치 기운이 났다고 한다. 이내 뭍에 다다르자 강아지는 죽고 근처에서 무당의 굿소리가 들리고 조문객들이 바삐 오가는게 보였다고 한다. 엄종한이 이를 기이하게 여겨 알아보니 자신의 아들들이 자신이 죽은 줄 알고 묘를 쓰고 이제 3년이 되어서 탈상을 하며 죽은 아버지의 넋을 위로하는 굿판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엄종한은 강아지를 묻어주고 집으로 돌아가 떡을 꺼내보니 흰 돌이 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이후부터 엄종한의 집이 크게 일어서 부자가 되니 엄종한의 집에 장가든 사위가 그 돌을 탐하여 엄종한에게 돌을 딸에게 물려 달라 간곡 하였으나 엄종한은 듣지않고 돌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다 숨기고 3년뒤에 죽었다고 한다.

 

 

4) 하나라 우왕과 단군의 이야기

과거 신석기 시대 중국 최초의 국가인 하나라 우왕이 우리나라의 시조인 단군왕검에게 치수(관계시설등을 새로 짓거나 보수하는 일)를 배우러 온일이 있었다. 그때 단군이 시범을 보이려 칼을 휘둘러 바위 절벽을 쳐내니 바위절벽에 구멍이 뚫렸다고 한다. 그것이 구문소의 구멍이 뚫린 유래라 한다.
 

 

 

구문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살펴보면 구문소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황지는 삼척부 서쪽 110리에 있다. 그 물이 남쪽으로 30여 리를 흘러 작은 산을 뚫고 남쪽으로 나가는데 천천(뚜르내, 뚫린 내의 한자식 표현)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자개문 설화 역시 같이 수록되어있다. 천천이란 말이 수록 되 있는 것으로 보아 구문소와 관련된 설화가 조선 전기부터 내려오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태백 팔경 중 하나로 꼽히며 그 모습이 경이롭고 단풍이 들면 그 경관이 절정에 다라 흐드러지니 태백시의 관광명소 중 하나로 꼽힌다. 또한 지질학적 연구 가치도 높으며 주변에서 조개나 삼엽충등 바다생물들의 화석이 많이 출토되어 과거에는 바다였으나 지반 융기 현상으로 고지대로 바뀐것으로 보이며 앞으로 이 지역을 관광지로 더 홍보하고 꾸며야 할것으로 생각된다.